
교보문고 북뉴스: 감정조절은 ‘안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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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조절은 ‘안전’의 문제 『감정 조절』 권혜경
- 등록일2016.08.25
늘 불안하고 긴장된다. 믿을 사람이 없다.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든지 내 뒤통수를 치고, 조금만 만만해 보이면 나를 호구 삼을 사람들이다. 내가 먼저 세게 나가지 않으면 내가 당할 것이다.
…… 잠깐, 지금 그 말, 나 비아냥거리는 거지?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나도 모르게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그냥 가벼운 농담이었는데 말이다. 화를 내고 나면 깊은 우울에 빠진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우리는 왜 이런 긴장과 분노, 그리고 후회와 우울이라는 감정들에 휘둘리는 걸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때, 우리는 날을 세워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 그것은 어찌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본성일 것이다. 문제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비상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외부 자극에 대한 정상적인,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반응을 보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 조절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감정 조절』은 건강한 개인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으로 ‘감정 조절’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저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과 사회 속에서 대물림 되는 트라우마의 고리를 끊고 사회구성원이 안전감을 느끼며 사는 사회의 만들기 위한 첫 걸음으로서 ‘감정 조절’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과 뉴저지에서 심리 치료 클리닉을 운영하며 뉴욕대학교에서 임상외래교수 및 임상감독가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감정 조절』의 저자 권혜경과의 인터뷰에서 감정 조절의 방법과 의미를 찾아보자.
![]() 보통 ‘감정 조절’이라고 하면 화를 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책에서 이야기하는 ‘감정 조절’은 다른 개념이던데요.
가장 큰 오해가, 감정 조절을 화를 참고, 짜증을 안 내고, 슬픔을 기쁜 마음으로 바꾸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거예요. ‘감정 조절’이란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감정들에 압도되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충분히 받아들이고 느끼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화가 나지만 이성을 잃지 않고 화가 난 상태를 견딜 수 있는 것, 슬프지만 우울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느끼는 것, 기쁘지만 압도되어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죠.
감정 조절이란 트라우마, 뇌과학, 자녀 양육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까지 연결되는 대단히 포괄적인 이슈던데요. 이런 주제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트라우마 관련 수업을 들었어요. 트라우마 치료 수업에서 관련 문헌들은 대부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에 대해 다뤄요. 홀로코스트 이후 반 세기가 넘었지만 지금도 사람들과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죠. 수업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주로 유대인들이고, 선생님도 유대인이었고요
그런데 저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홀로코스트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독일은 아직까지도 사과를 하고 전범을 찾아내 처벌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유대인들의 경험은 영화와 문학, 박물관 등을 통해서 계속해서 알려지고 이야기되고 있거든요. 전 세계 사람들이 유대인들은 피해자라는 것을 알아주고 거기에 대해서 많은 위로를 해주고 있고요.
그에 비해 한국인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역사적으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경험했지만 그것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피해자들도 빨갱이로 몰릴까봐 자신들의 경험을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지도 못했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럼 그런 한국인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책을 쓴 사람이 없냐, 없다면 네가 하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뒤로 숨고 싶은 마음이 강했죠. 하지만 한국에 살고 있지 않는 내가 한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런 일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트라우마와 감정 조절의 관계, 어떤 것이 감정 조절이고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쓰려고 했습니다.
감정 조절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세 가지는 각각 다른 논리로 움직이지만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하나가 변하면 다른 것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생각이 변하면 감정과 몸에 영향을 미치고, 감정이 변하면 생각과 몸이 바뀌고, 몸에 변화가 생기면 생각과 감정도 변화가 옵니다. 그 중에서도 감정이란 상황을 평가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어요.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행동 결과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감정은 어떤 사고나 통찰력보다 더 중요하죠. 몸이나 생각보다 빨리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고요.
![]() 책 속에서 감정 조절을 육아, 양육과 관련해서 서술한 내용도 흥미롭던데요.
감정 조절의 기원은, 내가 어떤 감정 조절을 받으며 자랐느냐는 것이에요.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 스스로 감정 조절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0이죠. 2살 정도까지는 감정 조절의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감정 조절을 100% 부모에게 의존하게 돼요. 부모가 아이의 신체적, 감정적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대응해주면 아이는, 불편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지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고 그것이 뇌에 인코딩이 돼요. 그리고 언제 끝날지 알면 조금 더 잘 참을 수 있잖아요.
아기였을 때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만 불편한 상황이 와도 그게 내 목숨을 위협하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고, 이 불편함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것이죠.
요즘 부모들이 고민스러운 게, 한 쪽에서는 아이에게는 규율과 학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어느 쪽이 맞는 건가요?
60년대~70년대에는 아이들은 학습하는 존재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해주면 안되고 규칙을 정해서 따르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했어요. 그런 내용을 담은 스포크 박사의 육아서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부모들이 그걸 따라서 아이들을 키웠죠. 그런데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너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요.
최근의 애착이론이나 최신 뇌 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론들을 보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알아차리고 충족시켜 주는 것이 건강한 애착을 만든다고 보고 있고요.
감정 조절의 기원이 유아기에 형성이 된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있나요?
많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한 두 살 때 이미 세상을 어떻게 봐야할 지, 남들로부터 어떤 것들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형성이 되지만 우리의 뇌는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계속 변하거든요. 그래서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어느 정도 뇌가 만들어져 있다고 해도 계속 노력하고 경험을 하면 변화시킬 수 있고 원하는 감정 조절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화가 나서 소위 ‘뚜껑이 열려버리면’ 조절이 불가능해지지 않나요?
뇌는 생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파충류의 뇌, 감정을 관장하는 포유류의 뇌, 이성과 사고를 담당하는 인간의 뇌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진화론적으로 본다면 위협이 왔을 때는 인간이면 안 돼요. 남을 배려한다거나 하다보면 자신이 죽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위협이 닥치면 인간의 뇌를 불이 꺼져버려요. 어떻게 보면 문제가 생겼는데 도마뱀(파충류의 뇌)과 닭(포유류의 뇌)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스템이 되는 거죠. 하지만 인간이라면 보다 진화된 문제해결 시스템인 인간의 뇌를 깨워서 지금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보게 하는 것이 필요해요. 감정 조절 능력이 필요한 이유죠.
감정 조절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그것이 한 개인의 비극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트라우마 대물림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 때문인데요.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트라우마의 대물림이 매우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고요.
가족 내의 남아선호사상이 알게 모르게 대물림되면서 가족과 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는 대표적인 것인데요.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언어적, 감정적 폭력 속에서 자란 여성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남성들 역시 피해자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책 속에서는 영화 <국제시장>의 윤덕수를 예로 한국사회에서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이야기했는데요. 저에게는 부모님 세대, 젊은 사람들에게는 할아버지 세대의 분들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서 사신 분들이에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식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가족들로부터 소외를 받죠. 그런 분들의 자식 세대 역시 경제적으로는 풍족할지 몰라도 자신들이 부모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에게 역시 적절하게 반응해주지 못해요. 과잉으로 간섭하거나 혹은 방임하거나 하는 슬픈 일들이 일어나는 거죠.
이런 트라우마의 대물림은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동물 연구를 보면, ‘핥아주기’가 그 방법이에요. 신체적으로 안전한 접촉을 말하는 건데, 인간의 용어로 바꾼다면 ‘사랑’입니다. 사랑해주는 되는 겁니다. 최근에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들이 뉴스에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요. 그걸 보면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사람도 아니다 그런 비난을 하지만 그들이 살아왔던 과거를 보면 그들 역시 힘들고 어렵고, 또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왔거든요. 살면서 안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코너로 몰린 삶을 산 거죠. 그렇기 때문에 감정 조절 능력이 없어져서 사소한 자극에도 과도하게 반응하게 되고 그것이 아이에 대한 학대 또는 사회에 대한 묻지마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죠.
그들에 대해서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고 어째서 그랬는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봐 주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 치유라고 생각해요.
![]() 내가 안전하다고 느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해도 공격당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있을 때 감정적으로도 보다 포용적이 될 수 있는데요. 사실 한국 사회는 그런 ‘안전감’이 부족해요. 다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노와 불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어요. 내가 안전하고 내 아이가 안전하고 내 이웃이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그러기 위한 가장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이 감정 조절이라고 본 것이죠.
제가 지금 한국을 방문해서 호텔에 머물고 있는데요. 어린 아이들은 호텔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그건 이기적인 거예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방해받고 싶지않다는 이유거든요. 아이들은 보살핌을 받고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인데 말이죠. 아이들이 조금 떠들더라도 그걸 용인하고 받아줄 수 있는 것이 안전한 사회죠.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감정 조절 연습 방법을 알려주세요.
숨쉬기요. 숨쉬기는, 돈이 안 들고, 누구나 방법을 알고 있고 또 누구나 이미 하고 있는 거잖아요(웃음). 특히 분노와 짜증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는 꼭 숨쉬기 연습했으면 하는데요. 신경생리학 메커니즘을 보면 교감신경은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고, 부교감신경은 느리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성격이 급하고 자주 벌컥 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교감신경이 자주 작동되는 거거든요. 습관적으로 작동되는 교감신경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부교감신경을 단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숨쉬기에요. 숨을 천천히 쉬면 몸의 반응 속도도 느려지고 생각도 천천히 가고 마음도 가라앉거든요. 임상에서도 습관적인 분노로 오는 내담자들에게 숨쉬기를 숙제로 내주면 다들 분노가 빨리 사라지고 신체적으로도 훨씬 건강해졌죠.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흔히 감정 조절을 개인의 문제로 많이 치부해요. 많은 책들에서도, 너만 참으면 되고 너만 잘하면 된다고 하고요. 하지만 감정 조절이라는 것은 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트라우마 공부를 하면서, 또 환자를 치료하면서, 전 사회가 짐을 나눠 들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을 때 개인의 감정 조절이 더 쉬워진다는 걸 알았죠. 개인들도 나와 내 아이와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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