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9 2014
트라우마는 정신 심리가 산산조각난 상태, 권혜경 정신분석가, 세월호 참사 이후 치료법 알리기 나서
입력 : 2014-07-17 22:42:40ㅣ수정 : 2014-07-17 22:42:40
- >“트라우마는 정신·심리가 산산조각난 상태” 권혜경 정신분석가, 세월호 참사 이후 치료법 알리기 나서
-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ㆍ“유족들이 어떤 말 하고 싶은지 들어줄 자세가 가장 필요해”

권 박사는 “트라우마 치료가 오래 걸린다는 것은 신화”라고 말했다. 치료법에 따라 고통의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트라우마센터가 많이 생겼지만 그는 “센터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트라우마를 다룰 수 있는 심리치료사가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1990년대부터 ‘트라우마 포커스 테라피’가 시작됐다. 베셀 벤델콕 하버드대 교수(보스턴 트라우마센터), 엘런 쇼어 UCLA 교수 등이 앞서가는 학자다. 보통 심리치료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생각과 감정을 바꾼 후 행동을 바꾸려고 한다면, 트라우마 포커스 테라피는 보텀업(상향식) 방식이다. 몸을 먼저 변화시키고 감정을 변화시켜서 생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보통 심리치료는 괴로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상처를 가만히 두면 곪아서 나빠지듯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선 아픈 부분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 박사는 이 같은 방식의 치료가 “아픈 사람을 고층 빌딩 바깥으로 던져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권 박사의 방식은 상상법이다. 상상법은 새로운 신경로, 새로운 기억의 저장고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는 “물에 빠졌던 트라우마가 있다면 가라앉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찾아보는 것. 경험하는 나와 바라보는 나 사이에 안전한 거리를 만드는 것, 상상으로 그 물에 있는 나를 구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박사는 이번 세월호 참사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족들이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든 들어줄 수 있는 자세”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부터 의사, 치료사, 정부까지 유족에게 계속해서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는 “언론이 모든 것을 보도할 순 없지만 유족들이 말하고 싶은 진실과 언론이 보도할 수 있는 진실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박사는 199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에서 트라우마에 관한 논문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심리치료 정신분석 교육기관인 NIP(National Institute for the Psychotherapies, Certified Psychoanalyst)에서 5년간 훈련을 받았고 뉴욕에서 ‘권혜경 심리치료 정신분석 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그는 “일부 정신과 의사들이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며 “치료사들에게 트라우마 치료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트라우마연구회를 만들 계획이다. 그는 “정신건강 전문가들, 예술가, 철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트라우마를 다각도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