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문제
중독된 사랑, 왜 내가 사랑한 남자들은 늘 나를 떠나갈까?
대학생 R씨는 남자친구 문제로 상담에 찾아왔다. 그냥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는 좋은데, 남자친구만 생기면 너무 집착을 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남자친구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싶고, 나의 모든 생활을 남자친구와 나누고 싶고, 늘 같이 있고 싶어하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하지만 사귀는 남자친구들 마다 이런 R의 태도에 처음에는 고마와 하더니 점점 숨이 막혀하고 급기야는 다들 R을 떠나버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고 이해받고 싶어했던 남자친구에게서 버림을 받을 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고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지만 어느새 또 다른 남자와 똑같은 패턴으로 만남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만났고, 이 관계를 파경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심리치료실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물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을 것을 알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집착으로 가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R씨의 경우는 남자친구랑 같이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남자친구와 떨어져 있을 때는 혹시 남자친구가 나를 잊어버린 게 아닌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닌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늘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거의 10분마다 전화를 해서 남자친구가 뭘 하고 있는지, 누구랑 같이 있는지를 알아야 했고, 남자친구가 어떤 일로도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왜냐면 R에게는 모든 여자들이 남자친구를 자기로부터 빼앗아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고 싸움을 막기 위해 가끔씩은 거짓말을 했고,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남자친구의 노력은 R씨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남자친구를 놓치지 않기 위해 R이 더 남자친구에게 더 필사적으로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럼 R씨는 왜 이렇게 남자친구를 못믿게 된걸까? R씨가 태어났을 때 집안형편이 좋지 않았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늘 유치원에 맡겨졌고, 부모님이 집에 돌아와서도 피곤해서 아이와 놀아주기 보다는 아이가 빨리 잠이 들기를, 그래서 본인들이 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5살이 되던 해, 여동생이 태어났고 아이 둘을 키울 수 없었던 R의 부모는 R을 시골에 있는 할머니댁으로 보냈고 초등학교 입학 할때가 되어서야 R씨는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겉으로는 항상 남을 돕고 밝은 성격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남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너무나 애쓰면서 동시에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주면 그걸 기뻐하기 보다는 그 사람으로 부터 버림받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던 것이다.
또한, 늘 자신만만해 보이는 R의 밝은 성격 이면에는, 자신이 부모의 기쁨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부모에게 짐스러운 존재, 언제든지 부모가 힘이들면 다른 곳으로 보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부모로 부터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상실감은 이런 부모의 자리를 메꿀 수 있는 즉,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이상적인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을 만들어냈고, 따라서 만나는 모든 남자친구가 이상적인 부모의 역할을 해 줄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자기도 모르게 테스트 하고 있었던 것이다. R은 치료과정을 통해 자신이 왜 그렇게 남자친구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고, 이제는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도 많이 줄어들었다. 남자친구가 자기가 가지지 못했던 이상적인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다 성숙한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본 정신건강 칼럼은 중앙일보(미주판)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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