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자식이 예쁘지 않은 엄마

내자식이 예쁘지 않은 엄마 : “비판적인 부모여, 자식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마치 어머니는 늘 사랑으로 가족을 대하고 인자한 미소로 자식을 바라봐야만 할 것 같은. 이런 어머니에 대한 환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실망을 하고 또, 어머니는 자신이 그려지는 어머니상과 다르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오늘은 우리가 이상화하는 자식을 끝없이 사랑하고 자식을 위해서 뭐든지 희생하는 어머니가 아닌 자식이 예쁘게 보이지 않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내가 배아파 낳은 자식인데 예쁘지가 않아요.” 라고 H씨는 말한다. 남들은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안아플 만큼 예쁘고, 자기 자식이 뭐든지 잘하는것 같아 천재가 아닐까 생각한다는데 자신의 눈에는 자식의 단점만 보이니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단다. 단점이 보이면 그걸 바로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아이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또 지적하고 하다보니 아이에게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어려서는 그래도 아이가 “네”라고 대답을 해 줘서 아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맘이 편했는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지적을 하면 아예 귀를 막아버리고,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얼마전에는 아이가 “you bring out the worst in me” 라는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이가 속이 상한것은 이해가 되지만 아이가 이런 단점을 고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할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엄마는 지적하는 것을 관둘 수도 없다고 느낀다.

이건 누구의 문제일까? 완벽하지 않은 아이의 문제인가 아니면 참고 넘어가지 못하는 어머니의 문제인가?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이 모자간에도 두사람의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엄마의 문제는 자신과 아이를 분리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자신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은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곧 이는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아이가 완벽하지 않은것에 대한 불안이 남들보다 강한 것이다. 즉, 이 엄마는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속에 있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평가하고 반성할 시간이 필요하고 이런 스스로의 피드백을 통해서 다음에는 이런 행동을 해야지, 안해야지 하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엄마처럼 아이의 사고 기능을 떠맡아서 아이대신 생각을 해주고 판단을 하고 아이가 무조건 따르도록만 하면 아이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되고, 스스로 판단하기 보다는 외부의 비판과 평가에만 수동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엄마나 외부의 지적이 없으면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엄마 입장에서는 또 어쩔 수 없이 아이의 단점을 지적하게 되는 것이고 계속해서 이런 악순환을 두 사람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럼 해결책은 어디 있는 것일까? 누군가 한사람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깨야 한다. 자식에 대해 비판적인 엄마들을 보면 자신에 대해서도 아주 철저하고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면 아이에 대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변한다. 아이의 단점 보다 더 큰 사랑하는 아이를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 칼럼은 중앙일보(미주판) 게재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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