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회적 인격장애

반사회적 인격장애 :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는 부모

얼마전 다급한 목소리의 중년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대학에 진학한 아들이 부모에게 심한 적대감을 보이고 대화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철처히 고립되어 친구도 하나도 없고 수업에 참석하지도 않으며 룸메이트의 말에 따르면 새벽에 들어와서 잠깐 잠만자고는 다시나가기 때문에 같이 말을 해 본적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 부모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아이가 화를 내는 정도가 그냥 화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눈빛에 살기가 돌고, 부모에게 막말을 하며, 부모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죽일듯이 달려들어 겁이난 부모는 아이를 더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아이는 전화도 안받으니 도대체 걱정이 돼서 잠이 오지 않는다. 몇년 전 버지니아에서 있었던 한인 학생의 총기 난사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지난번 아이를 방문했을때 학교 상담센터를 찾아가 아이에 대한 문제를 상의 했지만 아이가 이미 성인이 되었고, 현재로서는 타인이나 자신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어쩔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렇게 착하고 공부도 잘하던 아이가 왜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찢어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서서히 일어나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것도 아니었다. 이민와서 먹고 살기가 바빴던 시기에 착하고 늘 공부 잘하던 아이는 부모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자신의 어려움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가끔씩 가족들에게 격심한 분노를 표현했다. 이런 아이의 태도가 익숙지 않았던 부모는 아이의 문제를 들어주고 같이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매를 들어 아이를 다스리려고 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놔도 그냥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들었다. 썩 탐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의지삼아 괜찮아 질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아이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데도 말이다.

그때 누군가가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했더라면, 내가 아이의 고민에 좀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하고 후회를 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모든 병이 그렇듯이 초기에는 쉽게 잡을 수 있지만 오래 진행되면 치료하기가 어려워 진다. 청소년기가 아무리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는 하나 이처럼 심한 성격변화가 아이에게 일어난다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변화를 부모와 선생님들이 잘 관찰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병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마음의 병은 점점 깊어가는데 아이가 성인이 되어버리면 부모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 즉 부모가 억지로 아이를 치료를 받게 한다거나, 정신과 진단을 받게 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부모의 경우처럼 나빠지는 아이의 상태를 보면서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정신건강 칼럼은 중앙일보(미주판) 게재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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