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학증

피학증(Masochism): 피학증? 성적 쾌감만 생각하나? 오히려 처절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

 비영리 복지단체에서 일하는 A씨는 평생을 제3세계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서 싸웠다. 제 3국으로 날아가서 도움을 주기도 하고, 거리에서 투쟁을 하기도 하고 늘 그 사람들의 유린되는 인권을 생각하면 잠도 오지 않고 밥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이 뿐 만이랴? A씨는 길거리에 지나치는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신에게 있던 모든 현금을 줘 버리기도 하고 좋은 일을 한다던 친구에게 자신의 신용카드를 빌려주어 지금은 친구가 진 빚을 본인이 갚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A씨는 이렇게 미련하도록 남만 생각하고 자신은 잘 돌보지 않는 것인가?

이타주의, 즉 남을 돕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하고 나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면 이는 너무나 좋은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남을 위한 희생이 무의식적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 다른 얘기가 된다. A씨는 다른 사람을 돕는 데는 두손 두발을 다 들고 나서지만, 자신을 돌보는 일을 등한시 해 어떤 때는 한끼도 먹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있고, 자신의 자산관리를 재대로 하지 못해 늘 빚에 허덕이며, 이런 고통을 잊기 위해 늘 대마초를 피우고, 그리고 그런 자신을 자책한다. 남들은 A씨를 존경하고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스스로를 패배자라 생각하고, 진정 자신이 누군지 알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떠날거라 불안해 하고 있다.

A씨는 신심이 깊은 기독교 집안에 4남매중 장녀로 태어났다.성경의 말씀에 따라 어머니는 항상 자신보다는 남들을 먼저 생각하셨고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예를 들면 자신이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도 이웃사람이 자기가 쇼핑을 갈 동안 아이를 잠깐 봐달라고 부탁을 하면 거절을 못하고 달려가곤 했던 것이다. 이렇게 늘 남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가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A씨는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그로 인해 억눌린 분노가 얼마나 많은지를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다. 심리치료를 시작하면서 꾸었던 첫번째 꿈이 이런 A의 상황을 잘 알려주는데, 꿈에서 엄마가 온 몸에 종기가 난 채로 계단에 서 있었고 자신이 엄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엄마는 자신의 몸에 종기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엄마는 A에게는 너무나 명확히 보이는 고통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가정에서 자랐으니 내 고통은 무시하고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A씨가 느낀 것은 당연지사고, 부모로 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는 이에 따라야 한다는 삶의 방향성이 잡히게 된 것이다.

치료를 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은 A씨는 자신을 돌보지 않아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야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늘 남들을 돕느라,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너무나 바빴던 부모의 삶을 보면서 자란 A는 어려서부터 남들의 도움없이 혼자 스스로 일을 처리해 나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부모에게 관심과 사랑을 달라고 하는 것은 부모에게 짐이 되는 일이고 부모의 형편을 아는 A로서는 이런 이기적인 요구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극심한 고통에 있을때, 그때야 비로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부모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가면서도 변화를 시도하기는 커녕 속수무책으로 있었던 데는, 내가 스스로를 돌보면 남들이 자신을 돌봐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고, 그러면 자신은 평생을 혼자 고독하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A씨 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을 피학적 이라고 진단 할 수 있다. 하지만 A씨의 이런 피학증은 고통으로 성적 쾌감을 얻기 위해 그 고통을 추구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서 나온 필연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신은 다르다. 인간은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고, 사촌이 논을 사면 배도 아픈 때로는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이런 자연스런 인간의 모습을 무조건 억누르고 신과 같은 존재가 되려고 하기 보다는 이런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받아들이고 다스리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신건강 칼럼은 중앙일보(미주판) 게재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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