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벽증
결벽증: 깔끔한 것도 문제인가?
“선생님, 저는 뭐가 문젠 지 모르겠어요. 제가 좀 깔끔한 성격이긴 해요. 그게 왜 문젠가요?” 상담을 받으러 온 한 주부의 말이다. 물론 깔끔한 성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그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주부는 늘 집안 청소에 빨래를 하느라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청소하고 돌아서면 또 먼지가 앉은것 같아 또 해야 되고, 식기 세척기가 있어도 믿지 못해 일일이 손으로 그것도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닦은 그릇을 또 닦고, 아이들 옷에 조금이라도 뭐가 묻으면 바로 벗겨서 빨래를 하고 새옷으로 갈아입히고, 이불빨래를 이틀이 멀다 하고 계속 해댄다. 이렇게 일을 만들어서 하다보니 남편과 아이들은 물론 자신의 삶조차 살펴볼 여유가 없고, 너무나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쏟다 보니 사람들을 만날 시간조차 없게 된 것이다. 참다 못한 남편이 부인을 상담에 의뢰했다.
과연 이 주부는 단지 남들보다 좀 더 깔끔할 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왜 이 주부는 남들이 결벽증이라고 할 만큼 지나치게 깔끔하게 된 것일까? 엄격한 부모및에서 자라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사귀는 것이 힘들었던 이 주부는 몇년 전부터 나가기 시작했던 교회에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람들을 믿기 시작했는데 사소한 오해로 너무나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로 부터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어렵게 마음을 준 사람들이어서 그들로 부터 받은 상처의 깊이는 더욱 컸다. 이런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는 과정에서 이 주부는 사람들을 믿은 자신이 잘못이라 자책 하고 다시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거라 다짐을 하게된다. 친밀한 인간관계가 줄 수 있는 파괴적인 힘을 너무나 뼈져리게 느낀 이 주부는,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사람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성과 힘을 쏟는 것 보다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물건에 집착을 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그래, 내가 사람한테 상처를 받았으니 나는 이제 나한테 절대 상처줄 수 없는 물건들하고만 관계를 할거야” 라는 이 주부의 의식적인 결정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무의식 속에서 나타난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부처럼 많은 사람들이 왜 자신이 특정 증상들을 가지게 되는지 혹은, 남들에게 뻔히 보이는 문제들인데도, 본인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치료과정을 통해서 기억의 조각들을 끼워 맞춰 나가면서, 이 주부는 자신이 이 사건으로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또 이 상처가 어릴적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또 얼마나 자극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상처를 아파하고 슬퍼하는 작업을 통해 서서히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결벽증에서 놓여나게 된 것이다.
뭔가 심란한 일이 있을 때 우리 어머니들은 이불 빨래를 하거나, 집안에 있는 그릇을 꺼내 닦으셨다. 생각이 복잡하고,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아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차단하고, 또 이런 일을 통해 성취감이나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통제력을 다시 느끼게 되어 다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문제 해결 방법을 너무 지나치게 쓰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남들로 부터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말을 듣는다면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뭔가 회피하고 싶은게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스스로를 가사노동이라는 감옥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닌지.
“본 정신건강 칼럼은 중앙일보(미주판)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본인의 칼럼을 권혜경박사의 웹사이트 혹은 자매사이트에 싣고자 하시는 정신건강전문가들께서는 권혜경박사에게 이메일(drkwon@psychoanalystdrkwon.com) 주시기 바랍니다.”